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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 우민호 감독 “‘남산의 부장들’,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리려 노력했다”

기사 등록 2020-01-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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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민호 감독/사진 = 쇼박스 제공
[이슈데일리 황고은기자]지난 2015년 707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남다른 두각을 나타낸 우민호 감독이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돌아왔다. 매 작품마다 시대를 먼저 읽는 통찰력으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던 그다.

본지는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는 22일 개봉을 앞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사건을 벌이기 전 40일 간의 이야기로,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다음은 우민호 감독과의 일문일답

-영화 개봉을 앞둔 소감은?

"기자, 평론가 분들, 영화산업 분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제가 만든 영화중에서는 가장 좋게 평가해주시는 것 같다. 남은 건 대중의 평가다."

-영화 ‘내부자들’의 연출 방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부분적인 요소가 같은 맥락이 있는 것 같긴 하다. '내부자들'은 뉴스에 나왔던 사건이지만 베일에 싸인 이야기다. ‘남산의 부장들’도 잘 알려진 10.26 사건을 다뤘지만 그 이면에 싸여있었던 미스테리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내면 심리와 감정을 쫓아가는 점에선 비슷하다.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서 '내부자들'이 뜨거운 영화라면 이 영화는 차가운 영화다. 실제 사건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부자들'처럼 들뜨거나 흥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되도록이면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 영화를 그리려고 노력했다."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 사건은 큰 변곡점이 있었던 사건이고,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거대한 논리적인 인과관계나 크고 뚜렷한 대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제가 생각했을 때 희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인간간의 감정, 관계의 균열과 파열에서 오는 건 10.26 사건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특별한 감정이라기보단 우리가 갖고 있는 속상하고 아파하기도 하는 존중, 배신, 충성, 모멸, 자존심, 집착, 시기 질투 등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면서 서로가 불신하고 밀어낼 수 밖에 없다. 개인으로 돌아온다면 직장, 가족, 조직, 친구에서의 권력. 그 보편적인 감정들을 다루고 싶었다. 특별한 정치적인 대의나 거시적인 그림으로 이 10.26을 조명하는 게 아니라, 10.26 안에 있었던 내면과 심리를 쫓아가면서 10.26을 조명해보고 싶었다. 단지 과거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되돌아봤으면 했다."

-실제 역사를 다룬 영화이고, 보는 관점에 따라 정치색이 강한 영화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제작하면서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부담감은 없었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다 보니 사람들이 예민하게 볼 수도 있다. 잘 만들어야겠고 내 시선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작이 갖고 있는 냉정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어느 쪽에서도 정치적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시선을 유지하면서 인간들의 내면에 집중한 것 같다."

-영화를 보면 김규평이 상당히 민주적 사고를 갖고 있는 인물로 나오는데, 이는 원작에 근거한 건가.

"원작에 근거했다.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고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다. 나름대로 그의 진심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민주투사는 아닌데 너무 가버리니까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이 최후 진술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민주 투사처럼 이야기했다는 건 모르겠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정치를 대곡적으로 풀어보려고 노력한 것 같다. 양보할 건 양보 해야 한다. 그 당시 조금 더 유연성이 필요하고 양보할 것들은 조금씩 하려고 한 건 중앙정보부장이다. 힘으로 해결해야겠다고 한 게 경호실장이었다. 그렇다 보면 둘이 부딪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존 인물들과 극중 인물들의 이름을 다르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고 싶었다. 관계의 설정이나 내면은 다 창작이다. 실제 사건에서 가져왔지만, 그 이면에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원작을 통해서 추측은 가능하지만 사실은 아니라서 부담감이 있었다. 김규평과 박용각이 실제로는 선후배 사이인데, 친구 사이로 바꿨다. 이 영화를 통해서 그 두 부장이 관객들에게 한 인물처럼 보이길 원했다. 마치 1인자에게 쓰임을 당하다 결국엔 버려질 수밖에 없는 2인자의 운명같은 것이다. 포개면 같은 인물인 것처럼 찍었다. 그들의 최후의 모습은 공허하다. 구두를 잃어버린 채 피 묻은 양말을 바라보는 모습도 그렇지 않나. 친구 사이로 하면 극적으로 하고싶은 서사를 다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의 방식은 아니었다. 40일 만에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친구 설정을 바꾼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니지 않나."

-고증을 거치면서 시나리오를 수정한 건가.

"파리에서의 사건과 10.26 났건이 ‘남산의 부장들’의 메인 사건이다. 파리에서의 실종 사건과 10.26 사건이 단지 20일 차이밖에 안 나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대통령에 대한 충심으로 파리 사건에 가담했는데 그게 20일 만에 대통령에 대한 총성으로 바뀐 것이다. 부장의 내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충성이 총성으로 바뀌었을까 하는 이야기다."

▲ 우민호 감독/사진 = 쇼박스 제공
-극중 박통 역할을 맡은 이성민은 실존 인물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부담감도 없지 않았을 텐데.

"배우로서 부담감이 없을 순 없었을 것이다. 우리 영화에서 가장 싱크로율이 맞는 배우였다. 캐스팅한 게 닮음의 기준이 아니라 그 연기를 제일 잘 할 수 있는지를 봤다. 박 대통령은 너무 잘 알려진 얼굴이라 더욱 외모에 신경을 썼다. 그렇다고 전체 본을 떠서 똑같이 할 순 없고, 몇 군데 포인트를 잡았다. 관객들이 보고 말도 안 된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 특수 분장을 좀 했다. 이성민 선배는 시나리오를 보고 대통령의 정치적인 것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유신 말기에 독재자가 느꼈을 내면에 집중하고 있는 영화라며 흔쾌하게 수락을 하셨다. 유신 말기에 권력자가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에 집중을 했다. 자신을 향한 충성을 온전하게 믿지 못하고 2인자들을 계속 밀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희준 배우는 곽상천 역을 소화하기 위해 무려 25g를 증량했다던데.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이희준 배우가 원래는 스키니하다. '마약왕' 때 작품을 같이 했다. 부산에서 촬영 끝마치고 맥주 한 잔 하자고 했다. '남산의 부장들' 시나리오를 나중에 보여줄테니 같이 하면 좋겠다고 했다. 의아해하더라. 외모가 너무 다른데 일단 시나리오 나중에 보자고 하더라. 나중에 연락이 왔고, 다시 미팅을 했다. 그런데 왜 이런 역할을 줬는지 궁금해하더라. 잘 할 것 같았다고 답했다. 살을 찌우는 게 좋겠냐고 묻더라. 강요하진 않았지만, 잘 판단해보라고 했다. 나중에 살을 찌우겠다고 하더라. 한 번도 찌운 모습을 못 봤다. 감독이라고 해서 무조건 찌우라고는 못 한다. 스스로가 결심할 수 있게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마약왕' 때 송강호 선배와 라이벌 역으로 나왔는데, 에너지가 밀리지 않더라. 그 당시에 이미 이병헌 선배를 염두해뒀고, 그에 절대 밀리지 않았으면 했다. 살이 찌면 발성,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현장에서 깜짝 놀랐다. 못 봤던 모습이 나오더라. 경호실장이 가졌던 캐릭터와 실제로 다르다. 중앙정보부장은 실존 인물도 복잡한 사람이라 규정할 수 없다. 아직까지도 캐릭터가 비슷하긴 하다. 불안한 느낌이 강했다. 원작자의 이야기로는 가장 단순한 인물이 경호실장이라고 하더라. 레이어가 좀 얇다. 실제 그 분이 그런 성격이었던 것이다. 대통령을 옆에서 모실 때 좋은 말도 하고, 안 좋은 말도 해야 하지 않나. 그 충성이 맹목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박정희의 용인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명하지 않나. 18년이라는 시간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지킬 수 있었던 이유엔 18년간의 용인술이 있다. 2인자를 키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2인자들끼리 충성 경쟁을 시킨다. 잘 한다고 끌어 주는 게 아니라 어떤 이유로 쳐낸다. 마음을 한 2인자에게 두지 않는다. 추처럼 균형감각 있게 잘 맞추지만, 말년에 그 저울이 기울기 시작한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10.26이 나온 것 같다. 그렇게 용인술에 뛰어난 사람이 왜 마지막에 흔들렸을까 싶다. 직감적으로 자신이 느끼지 않았을까. 18년이란 세월을 그 자리에 있었으면 피곤했을 것 같다. 마지막엔 자기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위태위태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 다음에 자기가 철저하게 가졌던 용인술이 흔들리면서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듣기 싫은 사람의 말을 차단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 게 10.26 사건과 연결되지 않았을까 싶다."

-극중 박통과 김규평이 일본어로 대화하는 장면은 왜 넣었나.

"당시 실제로 정보부장과 대통령이 일본어로 대화를 자주 했다고 하더라. 과중하지 않고 한 모멘트를 해서 일제강점기 시대에 살았던 군인들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두 인물이 그랬다는 리얼리티를 싹 집어넣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 카메라 앵글이 인물에 집중돼 있는 게 느껴진다. 앵글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인물에 집중해서 찍고 싶었다. 또, 시대의 색깔을 제대로 살리고 싶었다. 촬영할 때 하나하나까지 미술, 의상 등 색들을 컨트롤하면서 찍으려 노력했다. 70년대의 레트로한 색깔, 화면의 앵글을 강박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어떻게 보면 망자들인데 영화 속으로 불러오는 것이다보니 초상화 같은 느낌 혹은 명함판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앵글을 그렇게 잡았다."

-이병헌 배우의 클로즈업을 자주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김규평은 '내부자들'의 안상구처럼 외향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안으로 꾹 눌렀다가 마지막에 쏟아내는 캐릭터다. 그 전까지 안으로 꾹 누르는데 감정이 보여야 한다. 그래서 얼굴이 중요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가짜라는 게 들통날 수 있다. 병헌 선배가 너무 훌륭하게 버텨 놀라움을 줬다. 이런 미세한 느낌들을 표정으로 감정의 극단을 표현한다. 감정에 따라서 스킨톤도 달라진다. 정말 대단한 배우다. 힘들었을 것 같다."

-촬영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잡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쉽진 않았다. 그 피를 억누르면서 분위기를 유지해줘야 했다. 그게 쉽진 않았다. 예산이 예산인 만큼, 배우들이 버티고 있으니까 계속 그렇게 찍어냈다.“

-한국 영화 최초로 파리 방돔 광장에서 촬영했다. 그 곳에서 촬영한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 사건이 그 곳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꼭 찍고 싶었다. 파리 시청, 경찰청에 허가를 받아야 했다. 프랑스 스태프가 60~70명이나 돼 놀랐다.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무척 뜨거운 것 같다.”

-마지막에 김규평이 남산이 아닌 육본으로 간 것에 대한 논란은 여전한데, 어떻게 생각하나.

"저한테도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왜 그가 자신의 본거지가 아닌 육본으로 돌렸을지에 대해선 하나로 방점을 찍고 싶진 않았다. 만약에 중정으로 갔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까 싶다.”

-전두혁 역의 서현우 배우는 대사는 거의 없지만,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분량이 많지는 않은데, 끝에 임팩트가 있다. 제안을 했을 때 처음부터 하겠다고 하더라. 얼굴에서 엘리트 장교나 정치 군인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에 웃긴 캐릭터가 워낙 없기도 하다.”

-‘내부자들’에서 여성 캐릭터를 도구화했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앞으로 여성 중심 서사를 해볼 생각은 없나.

"비판은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완전히 그 비판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껏 남자들의 영화를 했다면 언젠가 방향을 좀 더 옮겨가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많다. 여자들 캐릭터에 관심을 더 가져보고 있다. 이런 저런 것 고민만 하고 있고, 와이프가 준 아이디어도 있다. 그건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다. 고민만 하고 있다. '마약왕' 부터 '남산의 부장들'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쉬면서 저를 돌아볼 생각이다."

황고은기자 sukidayo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