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칼럼] 한문희의 트렌드킬

기사 등록 2015-10-3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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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ckinson's Fashion Note (29 Oct, 2015)
- 직경 5 센티미터 안에 담긴 '남자의 멋'

최근 들어 필자의 눈에는 시계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들이 부쩍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명 백화점에 속속 자리 잡아가는 유럽의 명품 시계 매장들을 보면 우리나라 고급 시계 시장이 성장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주변에 이런 고급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 아마도 평균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2014년 7월 22일 스위스의 '시계 중반기 수출 보고'에서 일본과 함께 가장 크게 성장하는 시계 시장으로 언급되었으며,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의 경우, 올 4월 롯데 백화점 본점 에비뉴엘에 입점 후 한 달 만에 1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그것이 순수 국내 소비자들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과 같은 해외에서 온 부호들의 구매력에 의한 것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필자의 머릿속을 스친 의문은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던 기능위주의 시계 이미지가 퇴색되어가는 요즘 아날로그 시계가 이처럼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바로 이 물음에서 출발하여 오늘은 부족한 지면이나마 '남자의 액서사리'라고 불리는 시계의 가치를 높이는 요소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시계의 가치를 높이는 요소들
가격이 높은 명품 시계와 그렇지 않은 시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디테일에 있다. 직경 5센티미터 안팎의 사이즈 내부를 빼곡히 메우고 있는 정교하고 복잡한 부품들의 집합인 무브먼트(Watch Movements), 중력으로 인한 시간의 오차범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투르비옹(Tourbillon), 깊고 영롱한 소리로 시각을 알려주는 리피터(Repeater), 윤달과 불규칙한 날짜의 한계를 극복한 퍼페츄얼 캘린더(Perpetual calendar)와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에 따른 달의 형태 변화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 문 페이즈(Moon phase)가 그것.

그리고 이와 더불어 예술성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장식된 외관 등과 더불어 숙련된 장인들의 기술력이 더해져 시계의 가치는 한없이 올라간다. 이러한 요소들 가운데 무브먼트와 투르비옹, 그리고 스위스 시계 장인들에 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시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각종 부품들은 시계의 가치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심장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무브먼트는 시계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에 따라 수백 개에서 천 개 이상의 크고 작은 부품들의 조립으로 이루어진다. 지난 해 파텍 필립 사에서 창립 175주년을 기념하여 선보인 그랜드마스터 차임 와치 5175R(Grandmaster Chime Watch 5175R)의 경우 시계의 케이스나 다른 부품들을 제외하고 무브먼트 부품만 1,366개가 쓰였다. 부품 개발에만 10만 시간, 생산 및 조립에 6만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투르비옹이 있다. 광장의 탑에서나 볼 수 있던 커다란 시계가 작은 주머니 안으로 들어왔을 때 시간의 오차 범위가 발생한다. 이는 서거나 눕거나 또는 걸을 때 변화되는 시계의 위치에 따라 밸런스 장치에 미치는 중력의 영향 때문이다. 바로 이 중력으로 인한 시간의 오차범위를 상쇄하는 역할을 하는 장치가 투르비옹 레귤레이터이다. 이 장치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eut, 1747~1823)가 1801년에 고안한 것으로, 무브먼트 이외에 추가로 200여개에 달하는 부품을 극도로 작은 중량으로 만들어 넣어야만 한다.

기계식 시계의 묘미는 직경 5센티미터 남짓한 작은 공간 안에 수백 개, 혹은 천개 이상의 작은 부품들이 서로 얽혀 돌아가며 정확한 시간은 물론 날짜, 시간 알림 등의 기능을 완벽히 수행하는 데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평생을 작은 부품들과 사투를 벌여온 장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급 시계의 기술력이라는 것은 바로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장인들의 능력이기도 하다.

오늘날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스위스 시계 장인들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이 한창이던 유럽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스위스 제네바로 건너간 신교도들 대부분은 수공업자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시계 장인들도 있었는데 스위스 제네바로 건너간 이들이 당시 뛰어난 금세공술을 지닌 스위스 인들과 만나면서 스위스 시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긴 겨울 척박한 날씨에 집안에서 치즈와 감자로 끼니를 때우며 시계 부품을 만들었던 스위스 시계 역사의 개척자들과 그들로부터 나고 자라난 수많은 스위스의 시계 장인들의 열정과 기술력은 수대에 걸쳐 이어져온 그들의 유산인 것이다.

시계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수학과 천문학, 과학 기술 거기에 반세기를 이어온 장인의 손 기술이 결합된 인간의 역사를 담은 작은 기록물이다. 그것은 오랜 세월 기술적 제약과 맞서 싸우며 인간의 한계를 직경 5센티미터 안에 집대성한 위대한 작품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한문희 : Fashion Designer / Dickinson's Room Ltd.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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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여창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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