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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 ‘리턴’ 봉태규 “10년 동안 갈고 닦은 작품이에요”

기사 등록 2018-03-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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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리턴' 스틸컷
[이슈데일리 최하은기자] 이제 ‘김학범’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하다. 2018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 ‘리턴’의 봉태규다. 시시각각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력성, 소름끼치는 눈빛, 산만한 제스처 등 김학범의 독보적인 캐릭터는 봉태규를 만나 빛을 발했다. 하루 전 마지막 회를 맞았을 그, 과연 ‘리턴’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작품이었을까.

2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에 위치한 프리미엄 라운지에서 봉태규를 만나 종영 소감을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봉태규는 “어제 드라마가 끝나서 늦게까지 스태프들이랑 같이 있다 왔어요”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종영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11년 만에 긴 호흡 인데 마지막 캐릭터가 죽는 거라 그런지 헛헛하다고 해야할까요. 새벽에 집에 도착했더니 아내랑 아이는 자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울컥해서 집에서 혼자 울었죠. 무슨 기분인지는 모르겠어요. 이런 식의 울컥함은 배우하면서 처음이어서 굉장히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높은 시청률로 막을 내리게 됐고 또 악역을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기존의 이미지가 있어서 그럴 기회가 거의 없었거든요. 하기 전에도 고민을 많이 했고, 하면서도 ‘어색하다거나 안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좋게 봐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

자신의 연기에 대해 만족감을 내비친 그이지만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한참을 망설였다고 한다. 사실 봉태규 없는 ‘리턴’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만약 출연을 고사했다면 어땠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다”며 웃어보였다.

“‘리턴’에 출연을 못할 뻔 했어요. 처음에 거절했거든요. (학범이가) 밑도 끝도 없이 악한 캐릭터잖아요. 그리고 요새 악역이 너무 많아서 어떤 부분을 잘 보여줄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어요. 대본상에서 학범이가 생각보다 많이 안 나와요. 역할이 크지 않은 건 다양한 감정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지인이 갑자기 (리턴이) 잘될 것 같다고 하시고, 아내도 그랬어요. 그리고 감독님과 가진 미팅에서 ‘태규씨가 모자란 게 있으면 그 안에서 그냥 표현하시면 된다. 믿고 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어제 (종영 뒷풀이에서)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했어요. ‘리턴’을 안한 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 사진='리턴' 스틸컷
극중 ‘내게 강같은 평화’라는 벨소리가 알려주듯 학범은 신학 대학교 교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매우 폭력성을 가진 인물이자 비인간적인 행동을 몰 삼는 무법자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악역 연기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역대급 악역’이라는 평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역시나 학범은 꼼꼼한 디테일을 살리려는 봉태규의 노력에서 탄생한 캐릭터였다고.

“제가 (연기를 하며) 가장 중점을 둔건 학범이를 악역이라고 생각 안했어요. 사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 드라마에 재벌 악역이 많이 등장했어요. 그래서 기존의 캐릭터와 겹치지 않게 하고 싶었죠. 그래서 의상도 조금 더 캐쥬얼하게 입었어요. 학범이 염미정의 시체를 묻으러 갈 때 천진난만했잖아요. 학범은 그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던 거예요. 오히려 제가 심각했던 장면은 진주씨와 함께 하는 장면 정도? 제가 악행을 저지르는 장면은 더 편하고, 일상적으로 보여지길 원했어요. 학범의 폭력성은 사람을 죽이거나 사이코 패스적인 게 아니에요. 이 친구의 일상적인 폭력이죠. 또 중요한 점은 학범이가 존댓말을 안해요. 저는 그게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물리적인 폭력도 정말 나쁘지만요. 학범이는 상대를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 중에 누군가를 하대 하는 게 가장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내게 강같은 평화’ 벨소리는 감독님이 나중에 즉흥적으로 넣으셨어요. 그리고 초반에 마사지를 받다가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해요. 원래는 그 지역이 아니었는데 비어있는 곳이 거기밖에 없어요. 그때 모든 사람들이 학범이라면 신경 쓰지 않고 주차하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 부분들이 ‘똘끼’가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감정의 흐름을 계산을 하는데 학범 캐릭터는 그렇게 안했어요. 오히려 그런게 입체적인 연기로 보여진 것 같아요.”

‘리턴’은 첫방송 이후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유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와 배우들의 열연 때문이었다.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뜨거운 화제를 몰고 다녔던 ‘리턴’. 결국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변호사의 살인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봉태규는 ‘리턴’이 우리 사회에 ‘절대적인 기준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결국 사회가 정해놓은 객관적인 기준이 있고, 모두들 거기 안에 들어가려고 해요. 그런데 ‘리턴’은 그 기준이 백 프로 맞는 건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 것 같아요. ‘리턴’에서는 그게 법이겠죠.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법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잖아요. 그런데 사실 틀릴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국민이 오천만인데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게 억지일 수도 있어요.”

최근 봉태규는 KBS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해 ‘아들 바보’의 면모를 보려주는가 하면 ‘살림남2’에서는 아내 하시시박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가족은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 중 하나인 듯했다. 그런 가족이 살면서 한 번도 본적 없었을 봉태규의 악한 모습. 뜻밖에도 그의 리얼한 악역 연기는 아들 덕분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첫 방송을 보고) 아내는 ‘쓰레기’라고 했어요. 어쩜 저럴 수가 있냐면서요. 애드리브냐고 대본에 쓰여 있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실제로 제가 학범이 성격을 닮았다면 전 배우를 못하겠죠. 리얼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10년 동안 준비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요새 육아를 좀 하거든요. 아이를 키우면 부모는 흡수만 해야 해요. 그런데 무조건적으로 그걸 흡수하는 게 어려워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어요. 그때 학범이 캐릭터를 만나면서 흡수해서 쌓여져 있던 게 연기를 하면서 폭발했어요. 아이가 작품 시작할 쯤 일춘기를 겪고 있었어요.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저한테 ‘하지 말라’고 하면서 울어요. 육아책 보면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해요. 그래서 화를 내지도 못하고, 훈육도 못하고 아이의 행동을 다 받아내야 했거든요. 제가 준이나 인호같은 캐릭터 했잖아요? 그럼 실제 생활에서 후유증이 엄청났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아들한테 참 고맙네요. (웃음)”

봉태규하면 ‘패션’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드라마 속 학범의 패션 또한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마치 군인을 연상하게 하는 일명 ‘반삭’ 머리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기존 재벌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고 할까.

“제가 패션에 관심이 많아요. 최근에 제가 관심 있어 하는 유행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제 스타일리스트 팀이 유능한 팀이에요. 요새 패션계에서 러시아 디자이너들이 흐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들의 쇼를 보면 각진 머리, 군인 머리를 많이 하고 나와요. 스타일리스트가 제안을 했어요. 안경 같은 경우에는 학범이 교수라는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이상한데서 ‘꼰대’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요. 그런 고지식한 면을 보여주고 싶어서 안경을 선택했어요. 또 의상은 기존 재벌들의 수트가 아닌 캐쥬얼한 느낌을 골랐어요. 의상이 자유분방해야 이 캐릭터가 차별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벌 한 벌 고심해서 골랐어요. 마지막에 피를 흘리며 죽는 장면에서 비쥬얼적인 부분을 신경 써서 흰 의상을 골랐죠. 한 신도 그냥 지나간 게 없어요. 여러 가지로 주변 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 사진='리턴' 스틸컷
기존 봉태규라는 배우는 ‘찌질한 남자’들을 대변하는 듯한 현실 연기로 사랑을 받아왔다. 2005년 ‘광식이 동생 광태’, 2006년 ‘방과 후 옥상’, 2007년 ‘두 얼굴의 여친’ 등의 대표작으로 다소 이미지가 굳혀진 부분이 있었던 것. 또 의도치 않은 공백기를 거치기도 했다. 그는 ‘리턴’을 통해 “13년 만에 대표작이 바뀌었다”며 작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내보였다.

“한창 활동했던 시기는 2007년 정도였는데 그 이후 여러 가지 일들이 있고 의도하지 않은 공백기가 생겼어요. 지금 이 시간들은 막연하게 10년 동안 기다린 순간이에요. 좋은 작품과 대중들의 많은 사랑이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고, 캐스팅 해주신 감독님께 너무 감사하죠. 13년 만에 대표작이 바뀌어서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 된 것 같아요.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악역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혼자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10년 정도를요. 학범이는 10년 동안 혼자 준비한 캐릭터예요. 그게 학범이를 할 때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연기가 ‘탁’ 쳤을 때 ‘탁’ 나올 수밖에 없죠.”

천상 배우임에 틀림없다. 공백기가 찾아왔을 때도 연기에 대한 회의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인지하지 않았더라도 공백기는 봉태규에게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그랬기에 ‘리턴’의 김학범이 이토록 빛나는 악역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봉태규는 ‘예인’이라는 말이 좋다고 했다. 예인은 여러 가지 기예를 닦아 남에게 보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이제 10년간의 공백기를 뒤로 한 채 사랑 받을 시간만 남은 ‘예인’ 봉태규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오래 쉬어서 그런지 꾸준히 작품을 하는 배우로 비춰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저를 호칭할 때 ‘배우’라고 안하고 ‘연예인’이라고 해요. ‘예인’이라는 말이 멋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연예인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 하대 받고 있어요. 사실 예인 안에 배우, 가수가 다 포함돼 있는 건데요. 그래서 저는 좋은 예인이 되고 싶어요. 그 안에서 연기를 성실하게 잘하는 예인이요.”

최하은기자 rinon9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