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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 ‘우상’, 한석규 “한국 영화 새로운 판을 짜야할 시기”

기사 등록 2019-03-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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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석규가 출연한 영화 '우상'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CGV 아트하우스
[이슈데일리 김혜린기자]이름 세 글자가 흥행수표인 배우 한석규. 그가 이번에는 영화 '우상'에서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살아남으려는 도의원 구명회로 변신해 비겁함의 끝을 보여줄 예정이다.

‘우상’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까지,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한석규는 극 중 차기 도지사 후보자이자 모두의 믿음을 얻고 싶었던 남자 구명회 역을 맡으며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예고했다.

항상 신선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에 목말라했던 한석규에게 심장을 뛰게 만드는 시나리오가 찾아왔다. 바로 ‘우상’이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한 배우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우상’이라는 시나리오를 만난 지도 대략 2년 정도 됐네요. 2017년도 여름에 이수진 감독에게 연락이 오고 나서부터니까. 시나리오를 받아 읽고 나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보통 시나리오를 빠르게 읽는데 ‘우상’은 시간이 좀 걸렸어요. 한 문장 한 문장이 아주 치밀했죠. 예전 영화 ‘초록물고기’ 영화 이후로 시나리오에 매력을 느낀 것은 오랜만이에요. ‘우상’이라는 시나리오는 오랜만에 만난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였어요. 시나리오를 덮고 나서도 계속 생각나는 스토리였죠. 직업이 연기자이니만큼 상상해가며 글을 읽어요. 특히나 마지막 신은 저에게 강력하게 다가왔죠. 시나리오를 덮고서 이수진 감독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단번에 알겠더라고요."

사실 ‘우상’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숨겨진 실타래를 풀어나가며 계속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한석규는 이수진 감독이라면 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상’ 시나리오를 보고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 내 몸을 통해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죠. 그 다음 드는 생각은 이게 영화화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어요. 영화의 탄생에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공감해주는 제작자예요. 어떠한 제작자냐에 따라 영화는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것 또한 영화라는 콘텐츠의 운명이겠죠. ‘우상’은 괜찮은 제작자와 투자배급사를 만난 것 같아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완성이 됐으니까요. 신인감독들의 장점은 모든 것을 다 쏟아붓겠다는 열정이에요. 이수진 감독도 영화 촬영하고 나서부터 5kg정도 빠진 것 같아요. 눈이 퀭하더라고요(웃음). 이 감독은 그 정도로 전부를 다 걸고 촬영했어요.”

▲ 한석규가 출연한 영화 '우상'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CGV 아트하우스
시나리오를 읽고 직접 연락까지 하며 강력하게 출연 의사를 보인 한석규. 그 정도로 한 배우에게 이 역할은 간절했다.

“영화 ‘우상’은 쓴 약 같은 존재예요. 나를 위하기 위해서 쓴 약을 먹어야 하듯이 ‘우상’은 꼭 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저는 전부터 비겁한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특히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고 살아남는 역할이요. 살면서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잖아요. 내가 연기를 왜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나는 무엇인가를 표현해내는 연기자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돼야 겠구나’라는 것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역할을 해보고 싶었고요. 그래서 구명회를 갈망했던 것 같아요. 저도 젊었을 때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기 뿐 아니라 삶 자체에서 자신감이 있었죠.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니 연기라는 자체가 하찮게 느껴졌어요. 그러다 50살이 됐을 때 연기라는 것이 제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일임을 알았어요. 결국에는 초심으로 돌아간거죠.”

벌써 데뷔 29년차로 현재 영화계에서 대선배인 그에게도 불나방같은 열정이 온 몸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16살 때 즈음일까요. 뮤지컬 ‘지저스 크라스트 수퍼스타’를 보고 온 몸에 전율이 올랐던 기억이 있어요. 그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그것에 어떻게 반응했냐는 거예요. 사람마다 반응하는 방법은 모두 달라요. 그것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유죠. 이게 바로 ‘우상’이 될 수도 있어요.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반응이 나온다면 그것은 병든 사회라고 생각해요.”

한석규에게 ‘반응’은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힘이자 가치관, 인생관, 직업관, 사회관, 역사관 등이 담겨있는 단어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구명회는 비겁하고 비열한 반응을 선택한 존재였을 뿐이다.

“구명회는 처음 지하실 문을 열면서 부터 바보 같은 반응들을 계속 하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순간이라도 괜찮은 반응을 보였다면 극악의 끝으로 폭주하며 달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영화는 가짜를 통해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이죠. 가짜를 통해 진짜의 정곡을 찌르는 것이 연기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 한석규가 출연한 영화 '우상'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CGV 아트하우스
‘우상’에서 한석규는 설경구, 천우희와 합을 맞추며 최고의 호흡을 보여줬다. 한 배우는 셋 중 가장 선배였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배우고 깨달을 때도 있었다.

“ 경구는 워낙 잘하는 배우이다 보니까 이번 작품에서도 좋은 호흡이 나왔던 것 같아요. 제가 놀란 것은 천우희라는 배우였죠. 우희는 까마득한 후배지만 그 친구만한 후배 연기자는 없는 것 같아요. 외면적으로도 엄청난 연기변신을 할 정도로 열정이 가득한 친구죠. 련화라는 캐릭터는 바닥까지 다 드러나는 역할이에요. 그런 역할을 서슴없이 선택해 줘서 고맙기도 하고 존경하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단지 그 친구보다 15년 더 빨리 연기했다 뿐인 것 같아요.”

영화 ‘우상’의 '상처가 났지만 아픈 줄을 몰랐다'는 대사처럼 현대 한국사회에는 곪을 대로 곪아 버린 상처들이 너무나도 많다. 지금까지 모르는 체 해왔던 진실들을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다는 한석규는 흉이 지더라도 상처에 약을 바르고자 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가 무엇인가’ 인 것 같아요. 창작자 입장에서는 이 주제가 해야할만한 이야긴가, 관객 입장에서는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가의 기준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저는 모든 작품을 이런 식으로 접근해요.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그것이 명확해지면 그때서야 어떠한 장르를 통해 풀어낼지가 결정되는 것이죠. 한국 영화는 지금 현재 새로운 판을 짜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네요. 새롭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의문이 제가 ‘우상’이라는 영화에 참여하게 된 주요 계기입니다. 한국 영화 신인 이수진 감독의 창작관이 저는 정말 새롭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이러한 현상들을 연기자로서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김혜린기자 gpfls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