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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 ‘공작’ 황정민, 신념에 대한 고민 그리고 초심(初心)

기사 등록 2018-08-0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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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슈데일리 김나연기자] 배우 황정민은 언제나 자신만의 색깔로 캐릭터를 빚어내는 연기자다. 실화와 실존인물을 연기했던 이번 영화에서도 여지없이 그는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냈다. 쉴 새 없이 새로운 캐릭터로 관객들을 찾았던 황정민, ‘공작’은 그를 초심(初心)으로 안내했다.

이슈데일리는 2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공작’의 황정민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극.

1990년대 대북공작원 ‘흑금성’의 실화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 ‘공작’. 황정민은 북으로 간 스파이 암호명 ‘흑금성’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할 때 얘기만 듣지 실존 인물을 만나보지 않아요. 괜히 만나면 그 이미지에 갇히게 되거든요. 근데 시나리오를 읽고 그 분을 너무 뵙고 싶더라고요. 어떤 신념을 가졌길래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오신 분이잖아요. 저는 세트에서 찍는데도 불구하고 다리가 벌벌 떨렸는데 그 분은 어땠을까 물어보고 싶었어요. ”
사람들은 흔히 첩보 영화라 하면 총격전과 추격전이 난무하는 ‘본 시리즈’ 같은 영화를 생각한다. 그러나 ‘공작’은 그 결이 다르다. 액션신이 없다고 스릴마저 없는 영화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첩보영화라길래 저도 처음에는 ‘본 시리즈’ 같은 영화를 생각하고 기대했죠. 그런데 완전 결이 다른 영화더라고요. 쉽게 생각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예를 들면 모든 대사가 액션 신처럼 다이내믹하고 감독님이 대사를 하는데 액션을 보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액션도 없이 다이내믹한 긴장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나 고민하고 노력해도 긴장감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완전 바닥을 쳤죠.”

그 어떤 캐릭터도 자신의 몫으로 소화해내는 황정민도 ‘공작’에서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액션신 같은 다이내믹한 대사. 즉 구강 액션은 천하의 배우 황정민에게도 큰 고민을 안긴 것.

“크게 많은 대사가 없던 상태에서 대사로 시작하는 첫 신이 있었는데 (이성민)형도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배우들끼리 속내를 잘 얘기 안하는데 이번에는 서로 얘기하고 호흡하는 것 조차도 디테일하게 공유하고 상의했어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한 신 한 신을 완성시켰죠.”

스파이 흑금성과 사람 박석영. 서울말과 사투리, 같지만 다른 두 사람을 오가며 연기해야하는 황정민은 감추면서 도드라져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가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절대 튀면 안된다”라는 생각이었다.

“편안하게 대화를 하면서도 밑으로는 양날의 칼들이 날뛰게끔 표현해야했어요. 그걸 관객들이 캐치를 해야 되는 거고. 그게 가장 중요했고 또 고민한 지점이죠. 애초에 1인 2역이라고 못을 박아놓고 시작했어요. 실제로 그 분은 사투리를 쓰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이건 영화니까요. 영화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선이랄까요. 실화를 바탕으로 하니까 뭔가를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사실 (영화상에서) 1인 2역이면 상상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너무 많은데 실화라 한계가 있으니까. 사투리는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차원이라고 생각했어요.”

황정민은 ‘공작’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김정일 전 위원장과의 대면 신을 꼽았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그 신을 찍은 소감에 대해 “도망가고 싶었다”고 밝힐 정도.

“촬영 기간이 딱 3일이었어요. 대사량도 많아서 그 시간 안에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이 신 찍기 열흘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하고 갔죠. 큰 공간이 주는 압박감에 김정일 역에 기주봉 씨가 들어오는데 진짜 심장이 터질 거 같더라고요. 가짜지만 진짜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많은 대사를 하면서 버벅대고 어긋내고. 성민이형이랑 둘이 자괴감에 빠져서 세트 벽 보고 계속 대사만 외우고 있었죠. 또 딱 서서 차렷 자세로 제스처도 없이 감정을 표현하려니까 밧줄에 꽁꽁 묶여있는 사람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현실에 반추해서 볼 수밖에 없는 영화다. 그렇기에 더 위험하기도, 사람들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고민보다는 겁먹은 상태였죠. 촬영 때만 해도 분위기가 너무 안좋았고 국내 정서도 안 좋았으니까요. 서로 ‘할 수 있겠어?’라고 했다가 점점 ‘우리 아니면 누가 해!’라며 다독거렸죠. 가장 중요한 건 이 이야기를 알고 나서 나만 알고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영화를 찍는 내내 ‘신념’에 대해 고민하고 또 깨달았다. 그에게 ‘공작’은 곧 ‘신념’이었을 정도. 캐릭터의 신념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자 곧 사람 황정민, 배우 황정민과 맞닿는 지점이 생겼고 이 고민은 물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처럼 번져갔다. 그리고 이로 인해 황정민은 다시 ‘변화’라는 시작점에 섰다.

“작품을 하면서 신념에 대한 고민이 짙었어요. 박석영이라는 인물이 재창조해서 만들어진 인물인데 이 인물은 도대체 어떤 신념을 가졌길래 나라의 부름에, 충성심에 목숨을 내놓고 활동할 수 있나. 그런 신념에 대한 고민을 했죠. 그러다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 관객들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다른 연기와 똑같이 했을 거예요. ‘공작’이 저한테 다른 에너지를 준거죠. 작업을 하면서 오랜만에 고민하면서 나를 옥죄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이 작품 때문에 내가 바닥이 드러나는 걸 스스로 느끼고 그동안 해왔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깨닫게 됐죠. ‘리처드 3세’를 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공작’이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작품이 된거죠.”

김나연기자 nadus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