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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기생충’, 봉준호 감독 “섣불리 희망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기사 등록 2019-06-1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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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인터뷰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CJ엔터테인먼트
[이슈데일리 김혜린기자]거장 봉준호 감독이 돌아왔다. ‘괴물’같은 작품으로. 바로 영화 ‘기생충’이다. 개봉 이후 단 한순간도 박스오피스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은 ‘기생충’을 통해 봉준호는 다시 한번 한국 영화의 입지를 강하게 다졌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계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SF영화 ‘옥자’, ‘설국열차’에 비하면 신작 ‘기생충’은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소소한 작품이었다.

“4~5년 정도 숙성 과정을 거쳐서 1~2년에 걸친 편집에서 나오는 거죠. 와인 위스키처럼 5~6년 정도 걸리는 작품도 있고요. 기생충은 2013년도에 구상한 작품이에요. 그때는 ‘옥자’를 제작하던 시절이었죠. 사실 제가 큰 그림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요. ‘설국열차’나 ‘옥자’가 천체망원경 같다면, 이 영화는 현미경 같은 느낌이에요.”

‘플란다스의 개’, ‘괴물’, ‘옥자’로 오랜 인연을 맺은 배우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에게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칸 가기 전에 식사 한 번 하자고 하시면서 연락이 왔었어요. 2년 전 ‘옥자’라는 영화로 같이 칸 갔을 때 이야기도 나눴어요. 이번에도 선생님이 격려를 정말 많이 해주셨죠. 조만간 한 번 뵐 것 같아요.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영화를 보신다고 했거든요.”

세계적인 할리우드 배우 틸다스윈튼도 수상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직접 칸 영화제에 참석해 ‘기생충’을 관람한 그는 ‘마스터피스’를 여러 차례 외쳤다.

“상영할 때 와서 봤어요. 저랑 강호선배 바로 뒤 쪽에 계셨어요. 남궁민수와의 즐거운 재회도 하셨고요. 저랑은 그 동안 꾸준히 만났었어요. 영화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셨다고 하셨고, 상 받고 뒷풀이 하고 있을 때 영상 통화로 축하까지 해주셨어요. 뉴욕에서 괴성을 지르면서 축하해주셨어요 (웃음). 너무 너무 감사했죠.”

해외 관객들에게도 봉준호 감독의 유머코드는 통했다.

“한국과 많이 다르지 않던데요. 예고편에도 잠깐 나오지만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이 노래 부를 때 굉장히 많이 웃으셨어요. 사실 2절, 3절도 있어요 (웃음). 외국인들이 ‘독도는 우리땅’ 노래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 상황을 캐치한 게 아닐까 싶어요. 미국에 사는 지인한테 들어보니까, 외국인들에게도 그런 노래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신기했죠. ‘얘네도 이런 느낌을 아는구나!’ 하고요.”

▲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인터뷰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CJ엔터테인먼트
칸 수상자들의 뒷풀이 자리에서는 어떤 대화들이 오갈까. 봉 감독은 술자리에서도 ‘영화인’의 피는 흐른다며 미소 지었다.

“감독들끼리 모이면 CG, 색보정 이런 대화를 자주 해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번 ‘기생충’에 대해서는 특히 집에 대한 것들을 많이 물어보셨어요. 세트라고 하니까 굉장히 놀라시더라고요. 가난한 집과 동네 전체가 세트라고 했을 때도 놀라셨고요. 엘르 패닝은 여배우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박소담, 조여정, 이정은, 장혜진에 대해 물어보면서 극찬을 했어요.”

‘기생충’. 제목을 듣고 재난 영화라고 생각하는 대중들이 다수였다. 영화 속 단 한 마리의 기생충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제목이 ‘기생충’인지 단번에 이해될 것이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실제 기생충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요. 김기영 감독님의 ‘충녀’ 같은 느낌을 풍기고 싶었어요. 제가 옛날 것을 좋아하는 취향이 있는 것 같아요. 기생충이라고 하니까 장르에 대한 오해를 많이 받긴 했어요.”

이번 작품으로 배우 박소담과 처음 호흡을 맞춰본 봉준호 감독은 박소담이 아니었다면 기정이는 탄생하지 못할 것이라 극찬했다.

“기정이 성격은 피시방에서 다 나와요. 거기서 이미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요. 연교도 단칼에 제압하고 은광도 제압하죠. 박소담 배우의 카리스마 엄청나요. 어리숙한 네 식구 중에 가장 똑똑하기도 하고요. 다송이 한테 완력을 행사하진 않았지만 간담이 서늘할 정도의 대사를 했을 것 같아요.”

극 중 송강호와 이선균의 케미도 엄청났다. 두 사람의 미묘한 대결 구조는 러닝 타임 내내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시퀀스의 두 남자배우의 미묘한 대결이 연기의 백미라고 느꼈어요. “그래도 사랑하시죠?”라는 장면, 두 배우가 풍기는 뉘앙스가 대단해요. 사실 그때 선을 넘은 거거든요. 인디언 모자 를썼을 때는 기택이가 이미 벼랑 끝으로 가고 있던 상황이에요. 그때는 이선균씨의 반응이 더 노골적이죠. 평소에는 젠틀하게 포장하기라도 하는데, 거기서는 포장도 잘 못하거든요.”

‘가족희비극’을 다룬 만큼 봉준호 감독은 두 가정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써야했다. ‘냄새’를 스크린에 담을 수 없던 그는 공간이나 소품을 활용해 양극의 차이를 표현해냈다.

“사는 곳이나 입는 옷은 극과 극이에요. 그런 부분들로 두 가족의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했어요. 연교가 ‘짜파구리’에 채끝살을 썰어 넣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한마디로 미스매치죠. 인스턴트에 이상하게 부유층의 레시피가 얹힌 느낌이랄까요.”

▲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인터뷰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CJ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 ‘옥자’와 달리 한국어로만 이뤄진 ‘기생충’의 번역 작업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번역 불가능한 부분들이 많기도 했어요. 우리의 도전의식을 자극했죠. 한국어 대사 자체도 여러 가지 뉘앙스가 있잖아요. 그래서 번역 할 때 해석의 여지를 너무 닫아버리면 안돼요 ‘설국열차’와 ‘옥자’는 대사의 상당수가 영어였는데 ‘기생충’은 전체를 번역했어야해서 어려웠어요. ‘짜파구리’ 는 진짜 난제였죠. ‘짜파구리’는 번역가 달씨가 ‘렘돈’이라고 번역했었어요. 라멘과 우동을 합친 거죠. 달씨의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죠.”

‘표준근로’와 함께 화제가 된 ‘기생충’. 봉준호 감독은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을 뿐이라며 ‘표준근로 아이콘’이라는 말에 손사래 쳤다.

“첫 도화선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표준근로의 아이콘이 된 것 같아서 민망해요. 우리의 공헌은 하나도 없어요. 영화 산업 노조와 업계의 대표적인 투자 배급사, 제작사들이 장기적인 협의와 논의를 통해 정착시킨 것이죠.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은 2~3년 전부터 실행해왔다고 해요. 촬영 시간을 연장할 때에도 스태프들의 동의 없이는 못해요. 초과 근무 수당을 주겠다고 해도, 안 받고 쉴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거예요. 급여도 상당히 정상화 됐어요. 그래서 스태프 자리 경쟁이 치열해졌어요. 영화 산업 노조에서 꾸준히 이런 부분에 대해 노력해 오셨죠. 이런 분들의 목소리가 나와야 해요. 봉준호와 ‘기생충’은 표준근로에 공헌한 것이 없어요.”

‘광대 없는 희극, 악인 없는 비극’이라는 봉 감독의 표현처럼 영화 ‘기생충’은 특별히 ‘악인’이 없어도 불편하고, 특별히 ‘선’을 넘지 않아도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희비극도 비극이죠. 기생충은 우리 현실에 대한 이야기죠. 물론 저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죠. 아무리 안 좋아도 한 구석에는 희망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스토리와 상황에서 ‘설국열차’처럼 호기롭게 희망을 던졌을 때, 무책임해 보인다는 느낌도 있고, 솔직하지 않은 느낌을 줄 것 같았어요. 슬프고 가슴 먹먹하더라도 솔직한 감정으로 끝내고 싶었죠. 기우의 마지막 모습을 봐도 자기 딴에는 다짐을 하거든요.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너무 안쓰러워 보이죠. 최우식은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안쓰러워 보여요. 걸어 다니는 안쓰러움이랄까.. 그 안쓰러움, 슬픔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 것이 ‘기생충’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최우식이 노래해요. 그 노래도 희망차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내죠.”

봉준호 감독의 모든 작품들은 하루 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공부와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각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채찍질하며 흘린 땀방울은 지금의 봉준호 감독을 존재하게 만들었다.

“칸도 이제 과거가 됐죠. 사실 귀국할 때도 비행기에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지금까지 올라갔던 언덕길을 굴러 떨어지는 것이 무서워요. 그래서 항상 연구하고 공부해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도 새로운 출발점으로 생각하려고요. 언젠간 현역을 떠나야 할 날도 오겠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계속 시나리오를 쓸 겁니다.”

김혜린기자 gpfls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