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데일리

[이슈인터뷰] 박소담 “‘기생충’은 우리의 삶”

기사 등록 2019-06-18 16:23

Copyright ⓒ Issuedaily. 즐겁고 신나고 유익한 뉴스, 이슈데일리(www.issuedaily.com) 무단 전재 배포금지

▲ 배우 박소담이 '기생충' 인터뷰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CJ엔터테인먼트
[이슈데일리 김혜린기자]‘연기 천재’ 박소담. ‘경성학교’, ‘검은 사제들’ 등 매 작품마다 엄청난 연기를 펼치며 충무로를 뒤흔든 박소담이 봉준호와 손을 잡았다. 그는 ‘기생충’에서 또 한번의 인생 연기를 선보이며 빛나는 커리어를 추가했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기생충’을 통해 처음 칸 영화제에 참여한 박소담은 칸에서의 모든 기억을 하나하나 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순간에도, 도착해서 밥을 먹는 순간에도 제가 진짜 이곳에 온 건지 실감이 안 났어요.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내가 사진으로만 보던 공간이 맞는지 헷갈렸어요. 우식 오빠는 영상 찾아보면서 인사하는 연습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사진만 찾아봤거든요. 웅장했지만 생각보다 편안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사진을 보니까 그때부터 실감이 나더라고요. 상도 받고 다 같이 한 번 모였던 자리가 있어요. 송강호 선배님이 ‘다 같이 느꼈으면 더 좋았겠다’ 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제는 누구나 다 알만한 명배우가 됐지만 그의 부모님에게 박소담은 여전히 귀여운 ‘딸’. 그 뿐이었다.

“저희 부모님도 9시 뉴스에 제가 나오니까 거실에서 서로 멀뚱멀뚱 쳐다 보셨대요. 어제 밤에도 11시 ‘접속 무비월드’에 영화가 나왔는데 엄마가 이건 봐야 한다고 하셔서 같이 봤어요. 사실 저희 부모님은 굉장히 좋아하시긴 하는데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을 하는 성격은 아니세요. 연락이 많이 오는 것을 감사해 하시면서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모르시겠대요. 부모님은 그냥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는 제가 대단하대요. 그런 에너지들을 다 받아서 나누라고 하셨어요. 너무 감사하다는 이야기도 하셨고요.”

‘봉테일’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 박소담은 현장에서 그 모든 것을 실제로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실 때부터 동선을 다 계산하셨대요. 그 동선에 맞게 박사장님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 하셨고요. 그런데 건축가 분이 ‘그 누구도 이렇게 집을 짓지 않아요’ 라고 하셨대요. 카메라 앵글에서 볼 때 서로를 발견하지 못하는 구조가 대부분이죠. 이처럼 모든 것을 다 계산하고 글을 쓰셨다는 것이 정말 놀라워요. 동선이 딱딱 맞아떨어질 때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을 때 정말 짜릿했어요. 거의 모든 것이 잘 이루어졌던 것 같아요. 특히 연교가 충숙에게 전화로 8분 뒤 도착이라는 전화를 하면서 기택 가족이 순식간에 숨는 장면은정말 딱딱 맞아 떨어졌어요. 그런 움직임과 장면들은 현장에서 모니터를 하면서도 짜릿하게 느껴졌죠. 알면서도 짜릿하던데요(웃음)."

대 선배들 사이에서 박소담은 어떻게해서든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축해 나가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님이 현장에 가기 전까지는 작품이야기 하시는 것을 쑥스러워 하세요. ‘기정이 너는 잘 할거야’ 이런 말만 하셨어요. 그래서 대사만 잘 외워가겠다고 했어요. 술 취한 장면을 촬영할 때는 어리광을 부리는 막내 분위기가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 식으로 연기해주면 좋겠다’느 정도로만 말해주셨죠. 하지만 저는 거기서 멈출 수 없었어요. 워낙 대배우님들과 연기를 해야했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 가긴 했죠.”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기정이가 다송이를 단번에 휘어잡은 비법이 궁금할 터. 하지만 박소담에게도 기정이는 다소 복잡하고 강한 아이였다.

"다송이 또래의 아이들은 가르친다고 해서 가르칠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니에요. 그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와의 교감, 접촉인 것 같은데 다송이는 연교와 그런 교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가정부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니까 엄마와의 교감이 많이 없었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기정이가 다송이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마음을 휘어잡지 않았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무슨 일이 있었죠?’ 라는 말도 그냥 던진 거예요. 여정 언니가 너무 잘 속아주니까 자신감이 붙은 것도 있어요.컷 사인 나면 언니는 저한테 ‘기지배! 나를 이렇게 속이고~’라고 하셨어요.(웃음) 그 사랑스러운 얼굴로 초롱초롱 저를 쳐다보니까 정말 제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교와의 장면은 모든 장면이 다 언니의 리액션 덕분에 나왔다고 생각해요. 언니가 너무 잘 받아주셔서 재미있게 찍었어요.”

▲ 박소담이 '기생충' 인터뷰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CJ엔터테인먼트
박소담에게 기정이는 현실에 있을 법한 청춘, 즉 아픈 손가락 이었다.

“기정이는 정말 실력 있는 친구에요. 비록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학원을 제대로 다니지는 못했지만 혼자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찾아보고 배우고 했을 거예요. 운이 안 좋아서 취업도 안되고 대학입시도 실패하다 보니까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을 한 우물만 팠을 것 같아요. 보기에는 굉장히 당차 보이지만 저는 기정이가 너무 짠했어요. 묵묵히 버텨온 기정이도 대단해요. 그렇게 다송이를 만나면서 불이 확 붙은 것이겠죠. 저도 졸업하고 한 달에 17개씩 오디션을 봤을 당시 엄청나게 떨어졌어요. 기정이는 10년째 그런 기분을 계속 느끼고 있는 거죠. 그래서 마지막 변기에 앉아있는 장면을 연기할 때는 더 마음이 아팠어요. 기정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거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짠했죠. 아마도 그 동안 가족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혼자 삭히는 공간이 그 변기였을 것 같아요. 박사장네 집에서 목욕을 깨끗하게 다 했지만 다시 돌아갈 곳은 변기였던 거죠.”

터프하면서도 섬세한 부분이 기정이와 닮았기 떄문일까. 박소담은 그래서인지 어느 캐릭터보다 기정이에게 더욱 애정을 쏟았다.

“비슷한 부분이 꽤 많아요. 할 말은 하면서 사는 것도 비슷하고요. 기정이가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도 말을 엄청 잘하잖아요.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점도 저랑 비슷해요. 그렇게 때문에 제가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처음 뵙는 분들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하기도 해야 하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기도 해야 하잖아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겁이 많은 성격이었으면 이 일을 못했을 것 같아요."

‘검은 사제들’로 큰 사랑을 받은 후 슬럼프가 왔다는 박소담에게 ‘기생충’은 벽을 깨고 나갈 매개체가 돼줬다.

“’검은사제들’에서 삭발을 했던 제 모습을 관객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걱정이 컸어요. 처음 시도하는 장르이다 보니까 거의 매일 회의를 했어요. 제 연기를 많은 분들이 봐주신 분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굉장히 벅차면서도 앞으로 나는 뭘 더 보여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부담감도 커졌어요. 저한테 기대가 된다는 말이 감사하면서도 부담이 되더라고요.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장 컸고요. 그런 부담감이 이번에 기정이를 연기하면서 많이 해소됐던 것 같아요.”

슬럼프를 겪은 이유가 연기에 대한 ‘부담감’이었다면 슬럼프를 깨기 위한 방법 역시 연기에서 오는 ‘설렘’이었다.

“저는 원래 연극으로 시작했어요. 학교 다닐 때 ‘옐로우문’이라는 연출팀이 왔는데 때마침 ‘렛미인’ 연극 공고가 떴어요. 뱀파이어 역할이고 새로운 역할이라는 생각에 ‘일라이’라는 캐릭터가 욕심이 났어요. 더 나이가 들면 그런 역할을 못할 것 같아서 빨리 도전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공개 오디션을 보러 갔고, 남자 10명, 여자 10명이 다 같이 운동복을 입고 오디션을 보는 방식이었어요. 그때 ‘검은 사제들’ 이후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여서 부담도 됐어요. 캐스팅이 돼서 정말 다행이었죠. 그 때 에너지가 확 올라왔어요. 매일 3시간씩 피 토하듯이 운동하면서 움직임을 배웠어요. 아직도 그때 사람들이랑 만날 정도로 친해졌어요. 그때의 연극 기억이 너무 좋아서 ‘클로져’, ‘앙리할아버지와 나’ 라는 연극도 계속 이어갔어요.박수를 받는 그 순간이 너무 힘이 돼요. 그렇게 에너지를 얻으면서 슬럼프를 극복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가족이라고 느꼈기 때문일까. 박소담은 어느샌가 최우식을 실제 친오빠처럼 챙겨주기 시작했다.

“오빠가 덤벙대는 스타일이에요. 오빠가 항상 챙겨주려고 하는데 부족하죠. 제가 챙겨줄 때가 더 많아요(웃음). 오빠는 너무 착하고 배려심이 많은 스타일이라서 남들은 잘 챙겨줘요. 근데 정작 본인을 못 챙겨요. 그런 부분들을 제가 조금 챙겨줬죠. 손이 정말 많이 가던데요(웃음). 나이는 한 살 차이 나는데 오빠는 계속 제가 누나 같다고 했어요. 우식 오빠를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다들 챙겨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부탁하지 않아도 뭔가 챙겨주고 싶은 스타일이에요. 너무 착하니까 덤벙대더라도 밉지 않은 것 같아요.”

▲ 배우 박소담이 '기생충' 인터뷰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CJ엔터테인먼트
우리의 삶이 ‘기생충’ 같다는 박소담. 대중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시나리오를 읽고 우리의 삶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스스로도 그렇고 외부 상황들도 그렇고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하잖아요. 때로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가 되기도 하죠. 우리가 사는 삶이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이 가진 힘인 것 같아요. 저도 빨리 객관적인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많은 관심을 주시는 것에 아직 얼떨떨해요.”

박소담이 처음부터 ‘연기 천재’였던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고통과 노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너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고 하셨어요. 연기하는 걸 계속 반대 하셨는데, 나중에 제가 연기가 너무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정말 너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어머니랑 짜고 아버지 몰래 연기 학원에 등록했어요. 아버지한테는 종합학원 다닌다고 하고요. 연기 학원에서 배우면서 처음으로 입시 원서를 넣을 때 아버지가 알게 됐어요. 그 때 거의 난리가 났죠. 그런데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을 때에요. 9월 수시 접수 기간에 아셨거든요. 다행히 대학에 붙었고, 20살 되고 나서 술 한 잔 사주시면서 그러셨어요.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근데 그 이후에 제가 오디션 떨어지고 힘들어 할 때면, ‘이제 와서 힘들다고 나약한 소리 하냐’고 말해주셨어요. 정신차리라고 하셨죠. 부모님은 항상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대요. 요즘에는 제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좋다고 하세요. 누구보다 저를 응원해주시는 든든한 존재죠.”

이제는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 놀고 싶다는 박소담. 아직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박소담의 끝없는 매력은 ‘기생충’을 통해 힘차게 날아갈 준비를 마쳤다.

“이번에는 액션을 할 예정이에요. 사실 제가 초등학생 때 육상 선수였어요. ‘경성학교’ 때도 와이어 없이 액션 촬영을 했고요. 평상시에도 활동적인 생활을 좋아해요. 단편에서 2번 정도 액션 촬영을 해봤어요. 이번에는 긴 호흡으로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대돼요. 또 다른 한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기생충’에서 받은 좋은 기운으로 촬영장에서 더 날라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김혜린기자 gpfls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