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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우상’, 설경구 “나의 ‘우상’은 연기”

'우상' , 뜨겁게 시작해 차갑게 끝나는 연기 어려웠다

기사 등록 2019-03-2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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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경구가 출연한 영화 '우상'이 20일 개봉,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CGV 아트하우스
[이슈데일리 김혜린기자]2019년은 설경구의 해인가. 상반기부터 그의 영화가 연달아 두 편이 개봉된다. 그 중 먼저 개봉하는 영화 ‘우상’에서 그는 탈색과 태닝 등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통해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우상’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까지,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설경구는 극 중 세상의 전부였던 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진 아버지 유중식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유중식에게 ‘우상’은 핏줄이었다. 그런 그에게 아들의 죽음은 슬픔 그 이상이었고 설 배우는 중식의 부성애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유중식이라는 캐릭터는 처음 제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행동도 이해가 안가고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었죠. 하지만 촬영을 하면 할수록 이해가 가더라고요. 중식은 기교가 필요 없는 캐릭터였어요. 또 부남과 중식이 둘만 살아왔기 때문에 저는 그 둘의 부자지간이 견고한 성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중식을 연기할 때 부남이의 목소리도 내고 싶었죠. 특히 흥분했을 때는 애 같은 소리를 내려고 했어요. 아들의 죽음을 확인 하고나서 핸드폰을 들고 울먹이는 장면에서 부남의 모습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장애를 가진 아들이었기 때문에 중식에게는 부남의 죽음이 더 안타까웠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나서 중식의 방향이 확 바뀌게 되죠. 련화 배 속의 태아를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파국으로 치닫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중식은 계속 잘못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어요.”

이수진 감독은 중식을 가장 뜨겁게 시작해서 차갑게 끝나는 인물로 설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설경구는 항상 촬영 전부터 극도로 흥분한 감정을 준비해야했고 이는 26년의 연기 경력이 있는 그에게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항상 감정을 끌어올리고 시작해야했어요. 첫 장면부터 아들의 죽음에 부딪히면서 등장하기 때문에 이미 절정의 감정을 갖고 왔어야했죠. 그 점이 좀 많이 힘들었어요. 촬영 전부터 흥분하고 억울한 감정을 지니고 있어야하니까. 중식이는 항상 숨이 차있어요. 어찌할 바를 모르기도 하고. 그 때 중식이는 ‘나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찼던 것 같아요. 중식이가 생각했던 견고한 성이 깨지면서 느껴지는 불안감이나 막연함이 가장 컸겠죠.”

극 중 유중식의 대사는 거의 없다. 표정, 행동만으로 관객들에게 감정을 전달해야 했던 설 배우는 이번 연기에 더욱 혼을 담아야만 했다.

“제가 이번 작품에서는 대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모든 신들이 다 고민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더 중식을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그 중 차를 거칠게 몰고 들어오는 장면을 가장 많이 신경 썼던 것 같아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한 상태에서 차를 몰고 들어오는 뒷모습을 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첫 등장 신이기도 했고요. 그 장면을 보고 관객 분들이 ‘이 사람 뭐지?’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또 두 번째는 중식의 집에 구명회 식구들이 몰려왔던 장면이 기억 남아요. 제가 이번 작품에서 대사가 거의 없는데 그 신에서 가장 대사가 많았어요(웃음). 중식은 메인 캐릭터들 중 유일하게 스스로를 돌파하지 못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굉장히 수동적이기도 하고 특이한 캐릭터죠. 어떠한 사건이 닥쳤을 때 리액션을 해야 하는데 그냥 얘기만 듣고 있어요. 연기하는 내내 너무 답답했어요. 감정은 최고조로 올려야하는데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에요.”

▲ CGV 아트하우스
‘한공주’로 혜성처럼 영화계에 등장했던 이수진 감독과 처음으로 함께한 설경구. 이 감독의 차분하고 조용한 스타일이 그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수진 감독의 디렉션 스타일은 굉장히 차분하고 조용해요. 안정적이죠. 촬영하는 시간이 한정적 이다보니 내적으로는 많이 힘들 테지만 내색을 안 해요. 하지만 사람이다보니 점점 급해지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죠.(웃음)”

최련화 역에 천우희를 추천한 것은 설경구였다.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천우희가 생각났다고.

“시나리오를 읽는데 련화에 자꾸 천우희가 이입되더라고요. 이 감독님은 사실 영화 ‘한공주’ 이후로 우희와 함께 하는 것에 부담스러워하셨어요. 그렇지만 저는 완전 다른 캐릭터인 만큼 부담을 느낄만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죠. 우희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천 배우는 몸집은 작지만 카메라 앞에서면 강렬하게 돌변하는 모습이 있어요. 특히 귀를 물어뜯는 장면은 제가 봐도 섬뜩하더라고요. 최련화는 괴물 같은 캐릭터예요. 눈썹도 밀어야 했고요. 우희는 그런 얼굴로 촬영 전에 뭐가 그렇게 좋은지 히죽 이죽 웃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짠 하다기 보다는 부러웠어요. 우희는 캐릭터에 그렇게 접근하는 듯 싶었죠. 그 친구는 주변을 편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 CGV 아트하우스
설경구는 중식이가 좇은 것은 ‘우상’이 아닌 ‘맹목적인 믿음’임을 깨달았다. 그에게 심어진 ‘우상’은 잘못됐으며 위험한 존재였다.

“‘우상’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맹목적인 것 같아요. 폭주하려는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대상만 보고 돌진하는 것이잖아요. 사실 우리가 만든 우상도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닐까요. 교육된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해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진심인양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맹목적으로 믿으려고 하잖아요. 아마도 그 분들에게는 기댈 곳이 필요한 것일까요. 이런 메시지가 감독님이 ‘우상’을 통해 전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배우 설경구에게 ‘우상’은 무엇일까. 오랜 기간 연기를 해온 설경구였지만 아직도 그는 연기에 갈증을 느꼈다.

“저에게 ‘우상’은 연기인 것 같아요. 연기에는 완성이 없다고 생각해요. 캐릭터에 좀만 더 다가가고 싶지만 연기자체로 100퍼센트 캐릭터를 완성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또 그렇게 완성적으로 캐릭터를 만드는 배우가 있을까요. 이런 모든 점들을 알면서도 계속 접근해 나가는 것이 배우라는 직업인 것 같아요. 고민은 계속되지만 답은 없는 직업. 나이를 먹으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사실 더 모르겠네요.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할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예요(웃음). 누군가의 우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절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럴 수도 없을 것 같고. 그냥 지금처럼 제 연기에 집중하고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혜린기자 gpfls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