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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기생충’, 송강호 “봉준호 감독 옛날과 달라진 점은 몸무게 뿐”

기사 등록 2019-06-1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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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호가 '기생충' 인터뷰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CJ엔터테인먼트
[이슈데일리 김혜린기자]‘시대의 배우’ 송강호. 그가 또 다시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 송강호는 영화 ‘기생충’에서 충격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넘칠 정도의 찬사와 호평을 받았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한국 영화 사상 첫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 하지만 송강호에게는 성과보다 관객들의 재미가 우선이었다.

“물론 성과도 중요해요.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도 업적이지만 관객 분들에게는 그러한 거창함 보다 생전 못 보던 영화에 대한 신선함이 더욱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재밌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역시 ‘황금종려상’답다 라는 말보다는 관객 분들이 지금까지 봐왔던 대중영화와는 다르고 재밌다라는 말을 최고로 듣고 싶어요.”

송강호는 ‘밀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쥐’에 이어 ‘기생충’으로 또다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영화제에서 평점 1위를 받고 ‘황금종려상’ 까지 수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기생충’은 이례적인 작품이에요. 그래서 저도 전혀 예측을 못했어요. 그런데 만약 ‘기생충’이 상을 받는다면 그건 봉준호 감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생충’은 칸 영화제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무려 8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제작보고회 때 봉 감독이 겸손의 엄살을 떨더라고요. 저는 사실 이 이야기가 한국만의 정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외신들도 수긍했어요. 자신의 나라와도 너무나도 비슷하다며 리메이크 하고 싶다는 곳도 꽤 많았어요. 그 정도로 우리는 모두 같은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그렇게까지 재밌게 보실 줄은 몰랐죠. 그날의 현장은 정말 열광적이었거든요.”

칸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강력 후보로 올랐던 송강호. 하지만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타며 그의 수상은 기대로만 끝나게 됐다.

“봉준호 감독만 수상자 뒷풀이를 갔어요. 저는 사진만 찍고 스태프들하고 숙소에서 조촐하게 파티를 했죠. 새벽 3시쯤 돌아온 봉 감독이 심사위원들이 영화랑 남우주연상 중복 수상은 불가하다고 저에게 상을 못 준 것에 대해 너무 아쉬워했다는 말을 전해줬어요. 근데 사실 저는 하나도 아쉽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다행이었어요. 왜냐면 ‘기생충’은 남우주연상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영화니까요. 또 ‘황금종려상’은 모두를 위한 상이잖아요. 그래서 전 정말 다행이었어요.”

▲ 송강호가 '기생충' 인터뷰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CJ엔터테인먼트
‘살인의 추억’으로 처음 만난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은 ‘괴물’, ‘설국열차’에 이어 ‘기생충’까지 4개의 작품을 함께했다. 그들의 호흡은 그야말로 ‘찰떡’ 궁합이었다.

“오랜만에 부담 없이 편하게 연기를 했어요. 좋은 배우들하고 같이 연기해서 사실 더 편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어요. 사실 이 작품은 봉준호라는 거대한 산이 있었잖아요. 봉 감독의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짊어왔던 무게감을 덜어낼 수 있었어요. 한번은 봉준호 감독에게 연락이 왔는데 지금까지 짊어왔던 큰 짐을 나눠서 들자고 하더라고요. 그 문자를 받았을 때 눈물이 났어요."

2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한 봉 감독과 송강호. 둘은 서로에게 배우와 감독 그 이상의 존재가 돼줬다.

“저는 봉준호 감독이랑 네 번째 함께하지만 이선균, 조여정 배우는 봉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춰봤잖아요. 처음에는 이 두 배우가 봉준호 감독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워낙 영화계에서 거장이다보니까 치열하고 집요할 것 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실제로 보면 봉준호 감독은 정말 편안하고 재밌는 사람이에요. 그 이면에는 따뜻함과 배려심도 굉장히 많고요. 초반에 감독 데뷔했을 때부터 봉 감독은 겸손한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똑같아요. 변한 것이 있다면 몸무게 뿐이죠.(웃음)”

기택에게서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는 송강호는 더욱 현실적이게 보이도록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봉 감독과 많은 논의를 거쳤어요. 기택은 연체동물 같은 인물이에요. 사실 그런 부분들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지만요. 김기택이라는 캐릭터가 특수한 인물이라고 느껴지진 않았어요. 누구나 한번쯤 그런 과정을 겪어온 세월들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잖아요.”

‘가족희비극’이 장르인 만큼 ‘기생충’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주인공이다. 지금껏 혼자 하는 촬영이 대부분이었던 송강호는 이번 작품을 통해 ‘함께’라는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박소담, 장혜진 배우는 과거 작품에서 짧게 만난 적이 있어요. 장혜진 배우는 ‘밀양’에서, 박소담 배우는 ‘사도’에서 후궁으로 잠깐 나왔었죠. 그래도 제대로 함께 합을 맞춰본 것은 처음이었어서 새로웠어요. 그러한 만남에서 오는 새로운 긴장감도 저에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왔고요. 그래서 현장에 갈 때 항상 신났던 것 같아요. 전작 ‘변호인’, ‘택시운전사’, ‘마약왕’ 등에서는 대부분 저 혼자 연기했는데 이번에는 다 같이 하다보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 송강호가 '기생충' 인터뷰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CJ엔터테인먼트
며칠동안 실시간 검색어에 자리했던 ‘기생충 해석’. 그 정도로 영화는 대중들에게 함축적인 메시지와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했다.

“‘기생충’은 우리의 삶에 대해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는 영화예요. 단순히 비관적인 마무리가 아니죠.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물음표를 던지는 작품이에요. 오히려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처럼 마무리를 지었다면 별로였을 것 같아요. 대중 분들에게 우리 현실에 대해 공생과 상생의 메시지를 남기며 화두를 던지는 것이 목적이에요.”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송강호가 인디언 모자를 쓰고 있는 장면을 다 기억할 것이다. 송강호에게도 그 장면은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았다고.

“마지막 부분에 제가 인디언 모자를 쓰고 묘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있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오늘도 돈 받고 일하는 거지 않냐는 박사장의 말에 복잡한 심경으로 그를 쳐다보는 그 기택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어요. 분노도 아니고 비관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는 그 미묘한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영화를 볼 때마다 '내가 저 연기를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사장은 계속해서 ‘선’을 강요하잖아요. 사실 선은 주관적인 존재예요. 냄새도 마찬가지고요. 이 주관과 관념이 우리도 알지 못하게 스스로를 가둬요. 우리 안에 자리잡은 이 어마어마한 존재를 영화는 공포스럽게 표현해냈다고 생각해요. 한마디로 우리 마음 속의 공포죠.”

최근 ‘표준근로법’이 영화계에도 도입되면서 화두에 올랐다. 과거 밤새 촬영하며 작품에 임했던 송 배우에게도 이 제도는 효율적이면서도 바람직한 지표가 됐다.

“봉준호 감독도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부분인데 어쩌다 보니까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표준근로법에 선구적인 존재가 됐더라고요.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사실 몇 년 전부터 법적, 사회적으로 정착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지금에서야 완벽하게 할리우드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고요. 현재 너무 좋은 환경에서 촬영을 하게 된 것은 사실이에요. 딱 12시간 이내에 끝내야 하다보니까 편하긴 해요. 근데 그만큼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스스로 준비를 해 와야 해요. 그날의 분량을 정확하게 마치기 위해서는 쉬는 날 가서 사전 점검을 하기도 하고 하죠. 봉준호 감독도 예외는 아니에요. 정해진 시간안에 분량을 끝내기 위해 정확한 프레임과 준비를 철저하게 해 와요. 저는 ‘표준근로법’ 도입이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데뷔 21년차 배우 송강호. 그에게 ‘좋은 연기’란 ‘헌신’ 이었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가 아닌 ‘남’이 봤을 때 카멜레온 같다고 느끼는 것이 ‘좋은 연기’의 시작이라는 그는 지금까지도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내 자신이 얼마나 카멜레온 같이 변할 수 있는가를 생각을 하는 순간 좋은 연기는 나오지 않아요. 변화무쌍함은 관객 분들이 느껴야 하는 것이니까요. 단지 저는 이 작품에서 연기해야할 인물에 대해서만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연기해왔던 것 같아요. 제 자신이 뭔가를 보여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주어진 환경 속 어떻게 헌신하는가와 같은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혜린기자 gpfls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