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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형’ 조정석 “30대 중반, 배우로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

기사 등록 2016-11-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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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양지연기자] 어쩌면 뻔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많은 한국 영화에 전반적으로 내재돼있는 ‘가족애’라는 정서를 앞세운 영화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만드는 조정석의 힘은 강렬했다. 조정석은 특유의 디테일한 연기를 극의 곳곳에 배치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예측할 수 없는 웃음과 예상 못할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조정석은 일 년 전 촬영을 마치고 이제야 관객들 앞에 선보이게 된 영화 ‘형’(감독 권수경)에 대해 벅찬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이번에 맡은 사기꾼 고두식 역에도 조정석의 색깔이 물씬 묻어난다는 감상에 배우로서의 주관이 담긴 대답으로 말문을 열었다.

“조정석의 색은 당연히 묻어난다고 생각해요. 역할에 그 배우만의 매력이 얹히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그 작품의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도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브로 코미디’를 표방한 영화답게 조정석 특유의 유쾌한 애드리브가 역할을 더욱 빛냈다. 그러다보니, 그가 이전에 큰 인상을 남긴 영화 ‘건축학개론’ 속 납득이가 생각난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다.

“납득이를 생각하며 고두식을 연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에 나오는 연애 코치하는 한 장면에서 납득이 생각이 났고, 오마주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촬영했죠. 그런데 이게 영화 전체적으로 납득이를 생각했다고 전달이 되는 것은 제 의도와는 다른 것 같아요.”

확실히 그의 연기는 납득이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많은 관객들이 좋아하는 납득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체화한 그가 나름의 방식을 통해 변형해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련함은 꾸준한 연기 경험과 그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로 가능했다.

“무대에서의 경력이 도움을 많이 주지 않았나 싶네요. 연기는 호흡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내가 이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어려움을 겪는다, 그럴 경우에는 말을 하지 않고 이 말이 나한테 수용되는 행동을 먼저 해봐요. 예를 들어 ‘나 이거 주울게’라는 대사를 해야 하는데 줍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면 대사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이 대사를 하려는 호흡이 안 나오면 행동을 먼저 해보는 거죠. 연기 훈련에 도움이 되는 이런 방법들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역할 놀이도 있고. 어디까지나 완성본이 있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 장면의 롤을 만들며 이 시퀀스에서 내 역할은 무엇이고 그런 것들을 생각해요.”

이처럼 자신만의 연기 방법을 만들어낸 데에는 지금까지 작품을 해오면서 터득한 것들의 역할이 컸다. 작품을 관철하는 느낌부터 본인이 인식하는 자신의 위치, 책임감 등 여러 가지를 촬영 현장을 통해 배워나갔다고. ‘특종’ 때 맡았던 기자 역할을 발전시킴으로써 그는 ‘질투의 화신’ 속 앵커로서의 이화신을 더욱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늘 언제나 좋은 연기는 무엇인지 고민도 하고, 이 연기를 할 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고 와 닿을까 그런 고민도 당연히 하게 되죠. 나이를 먹고 저도 모르게 쌓이는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연륜은 무시 못해’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연기 잘하는 거 알았는데 이렇게 잘했어?’라는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아마 그런 것들이 쌓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예전에 연기를 했으니까 이렇게 해야지 혹은 매번 과거의 내 캐릭터를 깨버려야지 이런 건 아니고 상황에 최선을 다해서 연기하려고 고민합니다.”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꾸준히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서 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발전된 연기를 보여주는 것에는 그만큼의 노력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정석은 전작의 자신을 완벽하게 버리지 않으면서도 색다른 변화를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쉼 없이 달려왔기에 이제는 조금 쉬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털어놨다.

“이번에 쉴 때는 충전을 제대로 하려고 합니다. 감정노동을 하는 연기자로서 연기가 재미있기는 해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도 사람에게 치유를 받잖아요. 울고 있는데 당연히 힘들죠. 하지만 연기하는 게 재미있으니까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올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번에 제대로 쉰다면 말 그대로 정말 충전을 하려고요. 집밖에 안 나가는 일이 다반사일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러다 지겨우면 못 만났던 친구들 만나려고 해요. 여행도 생각은 했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그는 고두식처럼 쾌활한 편일까, 아니면 함께 호흡을 맞춘 도경수가 말했듯 좀 더 진중한 편일까. 조정석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입체적인 사람이었다. 본인에게 내재된 센스로 분위기를 띄울 줄 알지만 그러면서도 상황을 보는 시선은 차분했다.

“저는 과묵이라는 표현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보일지언정. 하지만 진중한 편이긴 해요. 나서서 뭔가 하지는 않고 조용히 있는 편인데 그래도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만나서 술 한 잔 한다거나 이러면 기분 좋으니까 재밌게 놀기도 하죠. 애드리브가 센스 있다고 해주시는데 그런 멘트를 매번 생각해서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 호흡이나 캐릭터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 잘 관찰을 해서 그런 상황들이 닥치거나 할 때 시도해보는 거죠.”

모두에게 공감을 안길 수 있는 ‘센스 만점’ 애드리브는 그의 관찰력에서 비롯된 것임이 엿보였다. 본래 애드리브라는 것이 극을 구성하면서 나타나는 즉흥적인 요인인 만큼 주변 배우들과의 호흡도 중요하지 않았을까. 영화 속 고두식의 동생 고두영으로 나오는 도경수가 그랬듯, 조정석 역시 배우들 간의 호흡은 최고였다고 이야기했다.

“호흡을 얘기하자면 기가 막히게 좋았죠. 우리 둘 호흡이 좋지 않았다면 코미디도, 정극도 잘 안 살았을 텐데 많은 분들이 초중반 실컷 웃고 후반부에 눈물을 흘리시는 걸 보니까 촬영할 때 좋았던 호흡이 결과물에서도 보이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등한 배우로서 호흡을 맞추는 것 외에도, 조정석은 촬영 현장에서 선배로서 진심어린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특히 도경수의 감정표현에 조정석의 한 마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원래 많은 얘기를 해주는 편은 아니에요. 스스로가 분석하고 있는 것에 방해는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심혈을 기울여 고민하다 얘기해주는 거죠. 경수가 좋은 집중력과 탁월한 감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노력하고 연기한 만큼 카메라에 묻지 않으면 속상할테니까 조언해줬습니다.”

도경수의 연기를 옆에서 관심 있게 지켜봤다는 것이 묻어나오는 대답이었다. 역시나 그는 도경수의 전작들을 거의 다 챙겨봤다고 덧붙였다. ‘너를 기억해’에서 사이코패스 역, ‘긍정이 체질’에서 영화과 학생 역도 인상 깊었다고. 도경수가 아이돌 출신이지만 선입견은 딱히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카트’에서 그를 처음 본 이후 대부분의 작품을 다 봤는데, 차라리 선입견이라면 좋은 선입견이 있을 정도로 훌륭한 인상이었다고 했다.

“박신혜씨와도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신혜가 됐다는 얘기를 듣고 경수랑 저랑 자지러지게 좋아했죠. 이번에 작품을 하면서 너무 좋았고 앞으로도 신혜와는 멜로에서 만나보고 싶기도 하네요.”

좋은 배우들과 유쾌하게 만든 작품. 그래서 그런지 조정석에게는 영화 흥행에 대한 뚜렷한 자신감이 보였다. 성격상 그는 원래 본인이 임하는 모든 작품에 자신감을 갖는 편이지만 특히 이번 ‘형’에서는 ‘가족의 이야기’가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했다.

“‘형’의 메리트는 아마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해요.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나 같이 느낄 수 있는 형제, 가족이라는 단어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생각나고 공감할 수 있게끔 하거든요. 그것이야말로 대중적인 ‘어트랙트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요즘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며 인터뷰 도중 가벼운 영어단어를 한 두 마디 섞는 그에게서 여유로운 유쾌함이 묻어나왔다. 본인을 돌아봤을 때 그동안 걸어온 길과 현재의 상황,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길이 모두 만족스럽다는 것이 모두 드러나는 태도였다.

“30대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내가 잘 살고 있나 생각을 해보면 너무너무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다 좋을 수만은 없고 옥에 티는 있을 수밖에 없죠. 바빠서 주위 분들 많이 못 보기는 해도,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후회 없이’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산 다음에 돌이켜 봤을 때 내가 지금까지 뭐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 잘 산 게 아니지 않나 싶어요. 경제적인 부분이라든지 어떤 위치라든지 아니면 배우로서의 가치라든지 아니면 조정석이라는 사람의 경쟁력이라든지 아님 내가 쌓아온 필모그래피라든지 그런 것을 돌이켜봤을 때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연기자 jy4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