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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리뷰]‘여교사’, 파격 로맨스 뒤에 치열한 생존 담은 문제작

기사 등록 2016-12-2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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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안예랑 인턴기자]"우습지 않아? 너는 되고, 난 안 된다는 거. 정말 안 되는 건지 끝까지 가보려고"

영화 '여교사'(감독 김태용)를 보고 나면 불쾌하다. 그 불쾌함이 어디에서 근원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영화의 주역 김하늘이 한 말이 생각난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그의 말처럼 영화를 보고 나면 자존심이 상해 한동안 여운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김태용 감독이 세밀한 심리 묘사를 담은 충격적인 스토리로 관객을 찾았다. 생존을 위해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포기해야하는 이 사회의 '을'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해당 영화는 여교사와 남제자의 파격적인 로맨스를 표면에 내세워 개봉 전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막상 열어보니 본질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여교사'는 계약직 교사 효주(김하늘)가 자신의 정교사 자리를 치고 들어온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과 자신이 눈여겨보던 무용특기생 재하(이원근)의 은밀한 관계를 알게 되고, 혜영에게서 그 하나를 빼앗으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효주는 어제와 오늘이 같고 오늘과 내일이 같은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비정규직 교사이다. 그런 효주의 인생에 모든 걸 다 가진 이사장 딸 혜영이 나타나면서 효주의 삶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부족함 없이 자란 혜영의 얼굴에는 항상 생기가 돈다. 혜영의 밝음은 효주의 어두움을 더 부각시킨다. 그래서 효주는 혜영이 싫었다.

이 두 인물은 극 중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표현된다. "정규직은 임신하면 축하받지만 비정규직은 결혼조차 꿈꿔서도 안 된다"는 극 중 대사가 두 계급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계급 사회 안에서 효주는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혜영을 이길 수 없다.

감독은 계급 사회에서 오는 열등감을 욕망의 분출로 표현했다. 효주는 우연한 기회로 혜영과 남제자 재하의 은밀한 관계를 알게 된다. 효주는 그 날 처음으로 혜영의 일그러진 얼굴을 본다. 혜영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비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희열감과 우월감을 느낀다. 효주가 혜영에게 느끼던 열등감은 서서히 재하에 대한 욕망으로 발현된다. 재하와 보내는 시간, 육체적 관계는 그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준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감독은 사회의 문제 하나를 던져준다. ‘타고난 계급은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다’는 문제이자 진실을. 효주는 생존 수단인 계약직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학생들이 다 보고 있는 운동장에서 무릎을 꿇으며 말한다. "내가 다 잘못 했어 한 번만 봐줘, 내가 너무 철이 없었나봐", 이는 전에 재하와의 사이를 들킨 혜영이 효주에게 빌며 했던 말이었다. 그 사과를 그대로 돌려주며 효주는 생존을 위해 자존감을 포기하는 ‘을’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두 사람의 대립, 특히 효주의 심리 변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김하늘은 극을 혼자서 끌고 나가야 하는 부담감에도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다. 삶에 대한 불안, 혜영에 대한 열등감, 재하에 대한 욕망, 그리고 공허함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변하는 효주의 감정을 무미건조한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관객에게 전달, 극의 몰입을 높였다

‘여교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한 영화였다. 효주의 욕망, 질투, 열등감 같은 인간적인 감정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도, 이 감정들은 생존에 아무 도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을’은 발버둥 쳐도 ‘을’로 남을 수밖에 없는 희망 없는 결말도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의미 있는 이유는 이 모든 내용이 현실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의 날카롭고 불편한 시각을 빌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무의식중에 스쳐갔던 사회 구조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는 1월 4일 개봉. 러닝타임 96분. 청소년관람불가.

(사진=외유내강 제공)

안예랑 인턴기자 yrang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