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데일리 박상준기자] 최근 극장가에서는 사투리연기가 단연 화제다. 다양한 사투리 연기로 오묘한 맛을 낸 영화는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동안 영화속 사투리 연기가 맹목적인 '표준어 사랑'에 밀려 천대받아왔다면 이제 단연 '1등급 흥행소스'로 몰표를 받고 있는 것. 국내 영화에서 사투리는 지역색을 강조하거나 인물의 특성을 잡는데에 국한됐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멋진 정의의 사도에게는 표준어를, 각목을 든 건달들에게는 사투리를 부여했다.

최근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는 송새벽이 광주사투리를, 이시영이 부산사투리를 쓰면서 지역색과 사투리 이면에 숨어있는 인물 특성을 잘 표현했다. 지역별 사투리의 특성은 우리가 흔히 '혈액형별 성격'을 말하듯이 전형성을 지니고 있어 잘만 활용하면 단 몇마디의 대사에도 캐릭터의 성격과 배경을 짐작케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전라도 사투리는 전라도 건달을(영화 '가문의 영광'), 경상도 사투리는 경상도 건달(영화 '친구')을 지칭하기 바빴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다양한 인물군상들이 각기 다른 사투리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뽐내기 시작했다. 특히 '고지전'의 고창석, '퀵'의 이민기, '마당을 나온 암탉'의 박철민은 연기한 캐릭터만 살펴봐도 영화 전체가 보일정도로 그 맛이 강하고 중요한 조미료역할을 톡톡히 했냈다. 만약 이 배우들이 표준어로 연기를 했다면 영화속 인물들도 매우 어색하고 평면적 인물에 그쳤을 것임 분명하다.


'고지전'의 고창석, 평안도사투리 "내레 전쟁이라면 이제 이력이 난다"
배우 고창석은 영화 '고지전'에서 양효삼 상사 역을 맡아 연기를 펼쳤다. 앞서 고창석은 말더듬는 감독 연기부터 베트남어, 동티모르 언어까지 구사하며 '언어술사'의 면모를 보였다. 그런 고창석이 이번엔 평안도 사투리에 도전했다.

고창석이 연기한 양효삼 상사는 평안도 출신, 그러나 현재는 국군 소속으로 인민군과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얄궂은 운명의 캐릭터다. '고지전'에서 고창석은 북한 사투리 선생님께 사사까지 받으며 평소 대화에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열정으로 완벽한 사투리 연기를 펼쳤다.

평안도 사투리로 말하는 국군 양상사는 단순히 동향의 인민군과 싸워야하는 비극을 넘어서 극중에서 지리하게 반복되는 전투 속에서 전쟁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피아 구별이 흐려지는 상황에 대한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잡았다.


'퀵'의 이민기, 부산사투리 "니 대굴빡 터진다고, 이 가시내야"
'퀵'에서 말없이 시크한 이민기가 아롬이(강예원 분)가 폭탄이 장착된 헬멧을 벗으려고 할 때 다급하게 외친 소리는 다름아닌 부산 사투리였다. 더군다나 정통 부산말이 아닌 뭔가 어색한 사투리였다. 이에 대해 이민기는 "서울에서 몇년 산 부산남자가 구사하는 어눌한 부산사투리"였다고 설명했다. 이민기가 영화내내 바트게 내뱉는 부산 사투리는 때로는 코믹함을, 때로는 긴박함을 표현하며 요긴하게 쓰였다. 이는 부산 사투리 특유의 억양이 주는 코믹함과 긴장감으로 일거양득의 효과를 본 것. 영화 '퀵'에서는 등장 배우 대부분이 부산사투리를 구사하며 유머와 긴박감을 동시에 잡는 전략을 택했고 이것이 코믹과 액션을 넘나든다는 영화의 기획의도와 딱 맞아떨어졌다.


'마당을...' 박철민, 전라도사투리 "나의 지식을 누가 쪼까 훔쳐 갔으면"
박철민이 구사하는 전라도 사투리 속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구수함이 캐릭터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일명 ‘수달계의 꽃중년’인 ‘달수’는 귀여운 외모에 구수하고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를 쏟아낸다. 말 많고 오지랖 넓은 수다쟁이 캐릭터 ‘달수’와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코믹 연기의 대가 박철민은 놀라운 싱크로율을 선보였다. 특히 박철민은 '애드립의 황제'답게 적재적소에 재치만점의 현란한 입담을 선보여 관객들의 웃음을 독차지했다. '달수'외에 다른 캐릭터들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극중 '초록이'에게 비행을 가르쳐주는 동굴 속 박쥐는 스승의 위엄이 없는 경망스러운 듯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주고 있다.

이처럼 적재적소에 쓰인 사투리 캐릭터는 등장인물의 입체적 프로필을 제시하고 극 전체의 분위기에 녹아들어 다양한 느낌으로 맛을 내는 조미료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것이 헐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흑인캐릭터의 다양한 역할들 처럼 때론 터프하게 때론 코믹하게 맛을 내는 사투리 연기에 우리가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박상준기자 sj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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