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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과 전쟁의 경계 — 영화 〈난징사진관〉이 남긴 기억

기사 등록 2025-11-1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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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희창기자] 1937년 겨울, 일본군이 중국 난징을 점령하며 벌어진 학살은 인류사 최악의 비극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루촨 감독의 영화 '난징사진관'(City of Life and Death, 2009) 은 그 참혹한 역사를 다시 꺼내 들며, 전쟁 속 인간의 본질을 묻는다.

영화는 흑백 화면으로 시작한다. 색을 잃은 도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그리고 명령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병사들. 루촨은 어떤 영웅도, 명확한 악역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잔혹해지고, 또 어떻게 끝내 인간성을 잃어가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특히 일본군 병사 ‘가도’의 시선을 통해 가해자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점은 큰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영화의 핵심이다. 전쟁은 선과 악의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의 붕괴라는 것을 감독은 말하고자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승자와 패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그 자리에서, 인간의 얼굴은 낯설게 변한다.

'난징사진관'은 중국의 비극을 넘어, 인류의 기억으로 남고자 한 시도였다. 세계 평단이 이 작품을 ‘아시아의 쉰들러리스트’라 부른 것도 같은 이유다. 루촨은 선전이나 복수를 택하지 않고, 역사 앞에서 침묵하는 방식으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깊게 울린다.

이 영화의 잿빛 화면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이다.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비극을 다시 맞이하게 된다.
'난징사진관'은 그렇게, 역사를 기억하려는 인간의 마지막 양심으로 남는다.

한희창기자 han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