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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기획]코인으로 빚 내는 시대...가상자산 담보 대출, 가격 떨어지면 통보 없이 자동 청산

기사 등록 2025-12-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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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황지원 기자] 비트코인은 실물이 없는 가상자산이다. 금이나 부동산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가상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시장이 이미 형성돼 있다. 미국 암호화폐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와 디지털 자산 플랫폼을 통해 투자자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맡기고 현금이나 스테이블코인을 빌린다. 담보 인정 비율은 낮다. 가격 변동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보 가치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가격 하락과 동시에 담보는 예고 없이 팔린다. 전화도, 협상도 없다. 자동 청산이다. 전통 금융에서 담보 처분이 법적 절차를 거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이 같은 구조는 최근 미국 암호화폐 시장에서 거래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더 널리 확산됐다. 올해 들어 250곳이 넘는 미국 상장기업이 암호화폐를 보유하거나, 암호화폐 가격에 연동된 사업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알고리즘이 집행하는 담보
금융에서 담보의 기준은 실물이 아니다. 소유권이 명확하고, 가격이 실시간으로 매겨지며, 즉시 처분이 가능하면 된다. 암호화폐는 이 조건을 충족한다. 블록체인에는 소유자가 기록돼 있고, 거래소에서는 24시간 가격이 형성된다. 담보는 플랫폼이 직접 통제한다.
이 구조에서 담보 처분은 법원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맡는다. 가격이 기준선 아래로 내려가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실행된다. 투자자가 대응할 시간은 거의 없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올해 여름, 투자자가 보유 자산의 최대 10배까지 빌려 암호화폐 가격 변동에 베팅할 수 있는 상품을 출시했다. 이는 미 규제 당국이 관련 제한 조치를 철회한 이후 가능해졌다. 암호화폐 시장의 차입 규모도 빠르게 늘었다. 글로벌 암호화폐 담보 대출 규모는 올해 3분기에만 200억 달러가 증가해 74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이 대출이 단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코인을 담보로 빌린 자금으로 다시 암호화폐를 매수하고, 이를 또 담보로 맡긴다. 레버리지가 중첩되면서 시장 전체의 위험이 커진다.

▲한 번 흔들리면 연쇄 청산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면 자동 청산이 동시에 발생한다. 담보로 잡힌 코인들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가격은 더 떨어진다. 추가 청산이 이어진다. 이른바 ‘청산 연쇄’다.

실제로 지난 10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이 급락한 하루 동안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 최소 190억 달러 규모의 레버리지 거래가 강제 청산됐다. 이 과정에서 약 160만 명의 투자자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일부 투자자들은 급락 당시 거래소 접속 지연으로 매도조차 하지 못했다. 미국 테네시주에 거주하는 한 투자자는 계좌가 일시적으로 멈춰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거래소 측은 “트래픽 급증으로 일부 지연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동성은 암호화폐를 대량 보유한 상장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암호화폐를 매입하기 위해 대규모 차입에 나섰던 일부 기업들의 주가는 단기간에 80% 이상 급락했다.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 관계자들은 암호화폐 차입과 주식시장, 파생상품 시장이 연결되면서 암호화폐 위기가 다른 금융시장으로 번질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가상자산이다. 그러나 그 위에 쌓인 빚과 손실은 가상이 아니다. 가격이 흔들리는 순간, 담보는 팔리고 계좌는 비어진다. 기술은 금융을 빠르게 만들었다. 위험도 그 속도를 따라가고 있다.

황지원 기자 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