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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핑계고 시상식 천만뷰가 던진 시사점 '모두가 주변인이자, 주인공이었다'

기사 등록 2025-12-25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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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황지원 기자]유튜브 콘텐츠 ‘핑계고 시상식’이 공개 4일 만에 천만 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흥행 성과로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이례적이다. 기존 방송국 연예대상, 연기대상, 가요 시상식들이 해마다 화제성과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제작비도, 무대 규모도, 전통적 권위도 없는 이 시상식이 오히려 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 전반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왜 이 시상식에 열광했을까. 그리고 이 현상은 단지 예능의 영역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일까. 오히려 정치, 조직, 리더십, 공정성이라는 더 넓은 영역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감각을 정확히 짚어낸 사례는 아닐까.

▲톱스타가 ‘주변인’이 되는 순간의 해방감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송승헌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한국 연예계에서 ‘톱스타’라는 단어의 교과서 같은 존재다. 외모, 커리어, 인지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핑계고 시상식에서 그는 중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인이었다.

그가 럭키 드로우로 송이를 받으러 나가며 아이처럼 기뻐하는 장면, “아침에 시상식 하냐”고 농담 섞인 투덜거림을 던지자 유재석이“입 닥치고 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었다. 이 장면이 주는 쾌감은 단순한 웃음이 아니다. 이는 탈권위의 쾌감이다. 톱스타가 특별 대우를 받지 않아도 되는 공간, 오히려 그 자신이 그 상황을 즐기는 공간. 사람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숨이 트였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누가 더 위인가”를 기준으로 움직여왔다. 정치도, 조직도, 심지어 문화 행사마저도 그렇다. 그러나 핑계고 시상식은 묻는다. “굳이 그래야 하나?”라고.

▲무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

핑계고 시상식은 겉으로 보면 거의 무질서에 가깝다. 이광수, 조혜련, 김영철, 허경환, 하하 같은 인물들이 시도 때도 없이 끼어들고, 드립을 던지며, 흐름을 흔드는 듯 보인다. 기존 방송 문법으로 따지면 상당수는 편집으로 정리됐을 장면들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바로 그 혼란 속에서 오히려 리듬이 살아난다. 누군가 선을 넘으면 자연스럽게 제동이 걸리고, 분위기가 처질 것 같으면 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긴장을 회복한다. 이는 외부에서 강제된 통제가 아니라, 현장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공유된 감각에 의해 작동하는 자율적인 조정에 가깝다.

형이나 선배를 향해 다소 과한 드립을 날리던 이광수에게, 황정민이 말없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권위적인 제지도, 분위기를 깨는 훈계도 아니었지만, 그 한 번의 제스처만으로 상황은 정리되고 오히려 웃음으로 넘어간다. 자칫 어색해질 수 있었던 순간이 유쾌한 장면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들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하나의 통념을 흔든다. 질서는 반드시 위에서 잡아야만 유지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핑계고 시상식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질서는 꼭 권위에서 나오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상호 존중과 공감이 전제될 때, 질서는 더 유연하고도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시상식은 자연스럽게 증명해 보였다.

▲즉석 합의와 민주적 감각의 복원

이번 시상식의 또 다른 핵심은 ‘정해진 각본’이 없었다는 점이다. 럭키 드로우로 송이를 배분하는 방식조차 유재석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첫번째 축하공연에서 노래를 부를 사람을 뽑을 때도 그렇다. 출연자들이 즉석에서 의견을 내고, 그중 다수가 납득할 만한 기준을 찾아간다.

이 과정은 형식적인 투표도, 격식 있는 회의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민주적 감각이 존재한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드러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 가능한 규칙이 만들어진다. 중요한 건 결과보다 과정의 투명성이다.

이 장면은 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결정은 전문가나 지도자가 알아서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대중은 더 이상 그 방식에 만족하지 않는다. 핑계고 시상식은 아주 가볍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이 사실을 증명한다.

▲공정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

수상자 선정 방식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계원들의 투표로 수상자가 정해지고, 후보 역시 분명한 기준을 통해 선정된다. 인기나 친분, 눈치가 개입할 여지가 크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공정성의 한 단면일 것이다. 공정성이란 결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봐도 납득 가능한 규칙과 절차가 있는가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정치로 시선을 돌려보자. 공천, 인사, 선출 과정에서 우리는 과연 이 정도의 투명성을 보고 있는가. 특정 학연, 직업군, 인맥이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 구조를 갖고 있는가. 핑계고 시상식이 던지는 질문은 의외로 날카롭다.

▲즉석에서 열린 무대, 그리고 기회의 재분배

축하 공연조차 즉석에서 정해진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누가 노래할지조차 정해두지 않았다. 그 순간의 분위기와 합의로 무대가 열린다. 그 과정에서 우즈 같은 새로운 세대의 아티스트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기회의 배분 방식에 대한 은유다. 이미 검증된 이름만 반복 호출하는 구조에서는 새로운 얼굴이 나올 수 없다. 핑계고 시상식은 실력을 쌓아온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무대를 내준다. 또 그러한 무대를 모두가 환호하고 즐긴다.

이 장면을 보며 2026년 지방선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이런 식의 구조적 전환 아닐까. 내년 지방선거는 기존 엘리트만의 리그가 아니라, 준비된 새로운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을까?

▲다양성이 작동할 때의 시너지

이번 시상식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어쩌면 가장 당연한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가수, 코미디언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색함 없이 어우러지는 모습.

연예대상은 예능인만, 연기대상은 배우만, 영화제는 또 그들만의 세계. 우리는 너무 오래 분야별 칸막이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는 그렇게 분리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법조인만으로도, 운동권 출신만으로도, 경제인만으로도 사회는 굴러가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에서 드러난 검사·법대 중심 인사의 한계, 문재인·노무현 정부 시절 운동권 편중 인사의 문제 모두 같은 맥락이다.

핑계고 시상식은 말없이 보여준다. 다양성이 제대로 작동할 때 공동체는 더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시상식이 아니라 사회 실험이었다. 핑계고 시상식은 단순한 예능 콘텐츠가 아니다. 그것은 작은 사회 실험에 가깝다. 권위 없는 리더십, 자율적 질서, 투명한 규칙, 공정한 평가, 그리고 다양성의 조화. 사람들이 이 콘텐츠에 열광한 이유는 웃겨서만이 아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갈망하던 사회의 한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이 장면을 그저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로 넘긴다면, 또 하나의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대중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읽어낼 감각이 있는가다.

핑계고 시상식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제 사람들은 권위가 아니라 신뢰를, 통제가 아니라 공정한 규칙을, 독점이 아니라 기회의 순환을 원하고 있다는 것.

이 시상식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황지원 기자 wldnjsdl120@